뉴욕 피어57과 구글, 기업과 정부, 시민 모두가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었던 이유

개발자의 뉴욕 여행기. HBM 반도체 초호황기에 삼성, 하이닉스 성과급 논쟁을 바라보며 뉴욕 맨해튼 첼시 지역의 신흥 핫플레이스인 피어 57(Pier 57)에 얽힌 구글, 정부, 부동산 개발사, 지역 주민들 모두가 남는 장사인 진정한 상생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피어 57(Pier 57)

피어 57(Pier 57)은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역사적 부둣가를 재개발한 문화, 상업 복합 공간입니다. 1900년대 여객선 및 화물 터미널로 사용되다 항공 산업이 발달하며 맨해튼의 해운업은 자연스럽게 쇠퇴했는데요, 뉴욕교통공사(MTA)는 이곳을 인수한 후 뉴욕 시내버스들의 주차장 및 정비소로 활용해 왔습니다.

2000년대에 버스 차고지마저 문을 닫으면서 피어 57은 출입이 통제된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왔습니다. 뉴욕시는 이 역사적인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수많은 개발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난 등으로 난항을 겪었습니다. 이때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인재들을 잡기 위한 구글이 구원투수로 등장하며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맨해튼의 역사적 건물을 개조하는 것은 법적, 환경적 규제가 엄청나게 까다롭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구글이라도 뉴욕시는 무조건적인 기업 편의를 봐줄 수가 없는데요, 이에 구글은 피어 57을 독점하지 않고, 허드슨 리버파크 신탁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건물 일부를 대중에게 무료로 전면 개방하는 조건으로 개발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사실 구글은 이미 피어 57 바로 근처 첼시 마켓과 그 맞은편에 수조 원을 들여 매입한 거대한 뉴욕 메인 사옥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미국, 거기서도 인허가와 규제 같은 비효율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구글이 왜 굳이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는 공공 공간 기부까지 해가며 피어 57 재개발에 수억 달러를 또 투자했을까요?

현대의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교외보다 대도시 중심가를 선호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도시라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독보적인 오피스를 만든다는 것은 당연히 전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책이 됩니다.

한국에서 한강뷰 아파트를 선호하듯이 사방으로 허드슨강이 보이고 언제든 산책할 수 있는 옥상 정원, 뉴욕에서 가장 힙한 곳 중 하나인 첼시 마켓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출근하고 싶은 독보적인 환경을 제공해 줍니다. 이는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추는 강력한 요소가 되는데요, 구글은 앞에서 언급한 까다로운 법적, 환경적 규제를 단순 로비 방식이 아닌, 자본의 똑똑한 활용시민들의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정면 돌파했습니다. 여기서 구글이 선택한 방식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첼시 마켓 맞은편 구글 뉴욕 메인 사옥 첼시 마켓 맞은편 구글 뉴욕 메인 사옥

모두의 이득

피어 57이 위치한 부지는 허드슨 리버 파크 신탁에 의해 관리됩니다. 이 신탁(trust)은 ‘허드슨 강변 공원 법’에 의해서 관리되는데, 이 법은 제한된 상업적 용도(장기 임대)로 지정된 몇 안 되는 부두에서 발생하는 임대료를 이용해 공공 자금 지원 없이 신탁이 공원 전체의 유지보수 및 운영을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뉴욕시는 버스 차고지로 쓰이다 버려진 이 거대한 흉물을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할 재정적 여력도, 기술도 없었습니다. 가로수길 애플 스토어 사례처럼 IT 기업은 대규모 공사나 인허가 행정 업무를 직접 맡기보다 완성된 공간에 장기 입점하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여기서 영우앤어소시에이츠(Youngwoo & Associates), RXR 리얼티 (RXR Realty)라는 유명 부동산 개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합니다.

이들은 신탁으로부터 피어 57 빌딩을 97년간 빌리고, 4억 달러라는 자금을 끌어와 낡은 건물을 현대적인 최첨단 빌딩으로 완전히 개조한 후, 구글에게 재임대하여 막대한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글은 맨해튼이라는 금싸라기 땅을 굳이 소유하려 하기보다, 부동산 개발사를 끼고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거대한 상생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1. 허드슨 리버 파크 신탁은 개발사로부터 안정적으로 97년간 토지 사용료를 받아 공원 운영비를 확보합니다.
  2. 부동산 개발사는 구글이라는 초우량 임차인에게 최소 15년간 막대한 재임대 수익을 보장받습니다. 나중에 구글과의 계약이 끝나더라도, 구글이 가져다준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성 덕분에 다른 우량 임차인을 쉽게 유치할 수 있습니다.
  3. 구글은 투자자 유치, 대출, 인허가 관리 같은 귀찮은 행정 업무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 수천억 원의 개발 비용을 한 번에 지출하는 대신 본업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현금으로 임대료를 나눠 내며 맨해튼 최고의 입지를 장기간 누릴 수 있습니다.
  4. 금융권 및 투자자는 구글이라는 앵커 테넌트(핵심 임차인)가 확보되었으니, 이 수천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에 안심하고 돈을 빌려주며 이자와 배당 수익을 챙깁니다.
  5. 뉴욕 정부는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버려진 차고지에 할당되는 치안 비용을 해결하고 주변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구글 직원들과 피어 57 내부 푸드코트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소득세뿐만 아니라, 주변 부동산 가치 상승에 따른 엄청난 보유세 증가로 세수 증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6. 뉴욕 시민은 뉴욕 최대 규모의 루프탑 공원과 대중문화 공간을 무료로 누릴 수 있습니다.

피어 57 정면 피어 57 정면

플랫폼 기업의 생태계를 설계하는 힘

다시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현재 반도체 초호황기를 맞이하며 기업과 직원, 협력업체, 정부 모두가 성과급 배분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구글은 매년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익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라는 일차원적 분배에만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자본을 활용해 정부에게는 세금 0원으로 수천억 원짜리 공공 인프라와 97년짜리 연금을 안겨주었고, 시민들에게는 지역 상권 활성화와 멋진 문화 공간이라는 선물을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똑똑한 자본 활용은 정부와 시민 모두의 환호를 이끌어냈습니다. 기업의 막대한 이익을 사회가 질투하여 어떻게든 뺏거나 지키려고 싸우는게 아닌, 기업의 이익이 국가와 시민에게 어떤 방식으로 체감되어 돌아오는지, 지속 가능한 생태계 설계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진정한 플랫폼 기업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는 기업의 힘은 단순히 기술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마주한 문제(개발 제한 같은 까다로운 규제)를 로비나 꼼수가 아닌, 자신들의 자본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해야 사회적 지지를 얻으면서 동시에 장기적인 비즈니스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는지 아는 생태계 설계 사고방식이야말로 선진국의 진짜 무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한 이익의 분배를 넘어, 모두가 윈-윈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 뉴욕 여행 중 마주한 피어 57 건물에 얽힌 구글의 전략을 보며,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업과 정책 설계자들도 한 번쯤 깊게 고민해 보아야 할 최고의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피어 57에서 바라본 리틀 아일랜드 피어 57에서 바라본 리틀 아일랜드

참조: